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성근/야구 스타일 (문단 편집) ===== 오대산 극기 훈련의 실상 ===== > "그때 마침 아는 사람, 도사같은 사람(변도사)이 있어가지고 오대산에 산행(훈련)을 갔어요." > ---- > - [[https://www.youtube.com/watch?v=bXAdbLyWHVo|한국 현대사 증언 TV자서전 야구의 신 김성근 2부]] > 김 감독의 판단을 좌지우지하는 B라는 사람이 김성근에게 오대산 극기훈련을 권유했다. 만약 그가 우악스런 훈련 대신 리듬체조를 권했다면 태평양 선수들은 따뜻한 실내체육관에서 겨우내 리듬체조를 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B를 ''''변도사'''’ 라고 불렀다. … 김성근 감독은 신통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존경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그의 말을 절대 신봉하는 스타일이다. ... 그런 김성근에게 오대산 극기훈련을 권한 것은, 이제 누구나 다 눈치챘겠지만 바로 변도사였던 것이다. > ---- > - [[https://medium.com/@jhpae117/%EA%B9%80%EC%84%B1%EA%B7%BC%EA%B3%BC-%EB%B3%80%EB%8F%84%EC%82%AC-964db7a6f272#.pvkmikutv|이종남 기자의 [인천야구 이야기] 中]] 지금의 김성근 감독과는 좀 다른 이야기지만, 초기 김성근 감독 커리어의 중요한 사건으로 남은 오대산 극기훈련에 대한 이야기이다. 당시 김성근은 [[태평양 돌핀스|태평양]] 감독에 부임한 직후, 평소 신통력을 가졌다고 믿고 따르던 '변도사(본명 변영호. 실제 직업은 한의사)'가 오대산에서 훈련을 하라고 하자 이를 정말 실행에 옮겼다. 위에 나오지만 김성근 본인이 직접 도사같은 사람이 하라고 해서 오대산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원래부터 강훈련으로 유명했던 김성근은 [[태평양 돌핀스]]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1989년 1월 6박7일 간의 오대산 극기훈련을 실시했다. 김성근이 이런 유례없는 엉뚱한 훈련을 실시하겠다고 하자 태평양 구단은 "웬 미친짓이냐"는 반응을 보였다. 태평양 구단은 오대산 훈련의 실효성에 대해 회의적이었고 극기훈련을 허가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성근은 구단의 반대에도 한겨울 극기훈련을 추진했다. 구단이 비시즌 기간 훈련비용 지급 금지 방침 때문에 비용 지원을 해줄 수 없다고 하자, 김성근은 선수들에게 '''참가비+일주일간의 식사 준비물+취사도구를 낼 것을 강요'''했다. 선수들이 직접 훈련비를 내는 것은 전례없는 일이기에 선수들이 반발했지만, 반발하는 선수들은 2군으로 보내겠다는 거의 협박에 가까운 통보로 반발을 찍어눌렀다. 또 김성근은 구단이 오대산 훈련 비용을 지원해주지 않은 것을 구실로 첫 시즌을 시작하기도 전에 프런트와 대립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당시 오대산은 밤에는 영하 15도 이하로 기온이 내려갔고, 눈이 1미터 이상 쌓여 있었다고 한다. 새벽 네시부터 시작해 한밤 중이 될 때까지 선수들은 오대산에서 극기훈련에 임해야 했다. 특수부대원처럼 눈밭에서 포복자세로 기어갔고, 웃통을 벗고 영하의 칼바람을 맞으며 30분간 기수련을 했다. 알몸으로 얼음물에 입수기, 맨발로 눈밭을 뛰어가는 구보도 이어졌다. 극기훈련 내용 중에는 동물행동 흉내내기도 있었다. 10km 산악구보와 50km 행군도 이어졌는데 새벽 6시에 출발해 그 다음날 새벽까지 걸어가는 강행군이었다. 행군 때는 사과가 얼어서 못 먹고 땅콩만 먹으면서 걸어야 했다. 버너를 가지고 직접 밥을 해먹었다. 당시 선수들은 이런 지옥훈련의 성과에 의문부호를 붙이며 거부반응을 보였다. 주장 [[김일권]]이 "과연 이렇게 훈련하는 것이 시즌때 야구를 하는 것에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라고 반발하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반발하거나 훈련에서 낙오하면 2군으로 보낸다는 방침에 별 수 없이 이를 악물고 참아내야만 했다. 당시 얼마나 고생스러웠는지 [[김동기(야구)|김동기]]는 "칼이라도 있으면 (김성근을) 찔러 버리고 싶은 심정이다."고 말했고, 재일교포 김신부는 "연봉 1억원을 줘도 싫다. 당장 일본으로 돌아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당시 선수들은 대놓고 "야 이 개새꺄", "이거 끝나면 죽여버리겠다"며 김성근을 욕했다고 한다. 선수들이 이렇게 대놓고 김성근 감독을 욕했던 것은 김성근 감독 본인만 지옥훈련에 따라가지 않고 [[http://kini.kr/1453|다음 시즌을 구상한다는 이유로 따듯한 숙소에 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성근 감독이 지옥훈련 내내 혼자서 숙소에 틀어박혀 있었기 때문에 [[https://medium.com/@jhpae117/%EA%B9%80%EC%84%B1%EA%B7%BC%EA%B3%BC-%EB%B3%80%EB%8F%84%EC%82%AC-964db7a6f272#.pys1n2o3d|선수들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지만 누구도 감독에게 성토하고 나서지는 못했다]]고 한다. 때문에 오히려 팀워크에 문제가 생길 판이 되자 주치의 주인욱 박사가 나섰다. > 해가 질 무렵, 선수들은 오대산을 올랐다. --선수들'''만''' 오대산에 오르고 김성근 본인은 따라가지 않음-- > 얼음 속에 들어가고, > 허리만큼 쌓인 눈밭을 맨발로 걸었다. > 깜깜한 밤에 짐승 소리를 함께 들었다. --김성근은 혼자 숙소에 있어서 짐승 소리가 잘들림-- > 그리고 한 팀이 되어 내 눈앞에 돌아왔다. --극기훈련에서 돌아온 선수들을 숙소에 남아있던 김성근이 맞이함-- > ---- > - 김성근이다: 감독으로 말할 수 없었던 못다한 인생 이야기 p.103[* 김성근 자서전인 "김성근이다"에 나와 있는 위의 시를 음미해보면 김성근 본인은 지옥훈련에 따라가지 않고 혼자 숙소에 남아있다가 밤이 되어 선수들이 돌아오는 것을 맞이하는 상황이 묘사되어 있다.] 김성근은 가족병력상 간이 나쁘기 때문에 평소 간 건강에 무척 신경을 쓰고 있었고, 간에 좋다는 것이라면 어떤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이런 김성근에게 주인욱 박사는 "얼음물 찜질이 간에 그렇게 좋다"면서 얼음물에 들어갈 것을 설득했고, 오대산 훈련 막판에야 김성근은 숙소를 나와 얼음물에 들어갔다고 한다. 오대산 극기훈련은 1983년부터 연재되어 큰 인기를 끌고 1986년 영화로까지 제작된 [[공포의 외인구단]]에 나오는 [[실미도]]식 [[지옥훈련]]의 실사판이었다. 공포의 외인구단이 당시 국민적 인기를 끈 만화이자 영화이기도 했기에, 이런 무지막지한 극기훈련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겨울 극기훈련 때문에 적지 않은 선수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때문에 김성근 감독은 이듬해인 1990년에는 소리소문도 없이 극기훈련 일정을 3박4일로 대폭 축소해서 형식적으로 실시했고, 그 다음해(1991년)부터는 더 이상 이런식의 극기훈련을 실시하지 않았다. 훗날 오대산 극기훈련은 김성근의 정신력 강조를 보여주는 예로 포장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극기훈련에서 많은 선수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얻게 되어 시행 2년만에 조용히 그만두었다. 김성근 감독 또한 SK 감독 시절 인터뷰에서 [[http://bruce2k.com.ne.kr/1989.htm|이런 식의 극기훈련은 부상위험이 높기 때문에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성근이 오대산 극기훈련을 실시한 후 그해 태평양이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자 혹한기 극기훈련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곧바로 그해 겨울인 1990년 삼성, OB, 롯데 등이 태평양과 유사한 혹한기 극기훈련을 실시했다. OB는 태평양처럼 오대산에서, 롯데는 해병대에 의뢰해 한겨울에 유격훈련을 했다. 삼성 구단은 김성근의 지옥훈련에 크게 감명받았는지 그해 겨울에 2차례나 극기훈련을 실시했다. 우선 1월 6일부터 3박4일산 팔공산에서 극기훈련을 한 후 2월 3일 다시 선수들을 소집해 서울 근교의 한 공수부대에 입소해서 극기훈련을 치뤘다. 혹독한 훈련 속에서 막 현역을 은퇴하고 코치로 부임했던 [[권영호(야구선수)|권영호]]가 실신하여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원조 태평양은 3박 4일로 일정을 대폭 축소했고, 훈련 내용도 훨씬 완화되어 거의 형식적으로 실시했다. 그리고 그해 '''혹한기 극기훈련을 실시한 4개팀은 공교롭게도 그해 시원찮은 성적을 거두었다.''' 삼성은 전년도와 같은 정규시즌 4위에 그쳤고[* 이후 코시 진출], OB는 5위에서 최하위인 7위로 떨어졌다. 극기훈련의 원조인 김성근의 태평양도 3위에서 5위로 떨어졌다. 전년도 꼴찌(7위)였던 롯데만이 6위로 겨우 최하위를 면했을 뿐이었다. '''반면 혹한기 극기훈련을 실시하지 않은 나머지 3개팀은 그해 정규리그 1~3위를 독식했다'''. 정규리그 1위인 LG, 2위 해태, 3위 빙그레 등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상위 3팀은 모두 동계 극기훈련과 무관했다. 때문에 1990년 열병처럼 퍼졌던 동계 극기훈련 붐은 한해 반짝하고 사그러들었다. 훗날 삼성 류중일 감독은 1990년 반짝 유행했던 김성근식 동계 극기훈련은 [[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3020607|아무런 효과도 없었고 선수 부상만 발생시켰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해당 사건은 오히려 김성근 감독 스스로도 해당 훈련을 부정했고 더는 하지 않았기 때문에, 2000년대 이후의 김성근 감독에 대한 부정적 지적으로는 애매한 부분은 있다. 단, 해당 훈련에 자기만 쏙 빠져 있었던 만큼 선수와 함께 고락을 같이 한다는 이미지가 퇴색되는 것은 분명하다. 김성근은 이후 더는 혹한기 극기훈련은 하지 않지만, 선수들의 정신력을 바로잡기 위해 수시로 정신교육을 실시한다. 다만, 김성근 감독도 지옥훈련 자체는 실패를 자인했지만, 2023년 [[최강야구]]에서 밝혀지길 혼자 숙소에 있었다는 비판은 본인도 농담처럼 했고, 실제 선수단과 시작부터 얼음물 입수까지 주기적으로 함께 했다. 문서의 윗 부분에서도 나왔으나 김성근 본인이 함구해서 밝혀지지 않았었다. [[https://youtu.be/NyLxL9PEZE8|영상 9:06부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